Page 62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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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독과 같은 극독이라고 극언한 것이다.
성철스님은 해오점수의 장에서 오직 구경의 무심이라야 돈오견성이
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 과정에서 규봉스님과 보조스
님이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특히 깨달음 이후 남은 습기를 제거하
는 수행을 목우행牧牛行으로 보는 보조스님의 돈오점수론이 주된 비판
의 대상이 된다. “해오는 추중망상麤重妄想을 벗어나지 못한 허환망정虛
幻妄情이므로, 객진번뇌가 전일前日과 같이 치연히 기멸起滅하는 것” 339
이라 규정하면서 이 번뇌의 망상을 제거하는 ‘오후悟後의 점수’를 필요
로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문의
돈오와 견성은 이와 전혀 다른 지점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강조한다.
선문에서는 추중망상麤重妄想은 말할 것도 없고, 제8의 미세까지
영단永斷한 구경무심의 대휴헐처大休歇處가 돈오이며 견성이므로 망
멸증진妄滅證眞한 이 무심·무념·무위·무사의 금강대정金剛大定을
보임하는 것이 장양성태長養聖胎이다. 340
규봉스님과 보조스님의 해오로서의 돈오가 진정한 닦음의 시발점으
로 제시된 것이라면, 성철스님의 증오로서의 돈오는 궁극적 깨달음의
도달점으로 제시된 것이다. 서로 다른 지점을 말하고 있으므로 충돌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먼저 깨달은 뒤 닦는다(先悟後
修)는 그 시발점 자체를 문제로 삼는다. 왜 그럴까? 해오가 추중망상이
완전히 소멸하지 못한 자리라면 그 깨달음이라는 것 역시 추중망상을
벗어나지 못한 허환망정虛幻妄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에 의지하
339 퇴옹성철(2015), 275.
340 퇴옹성철(2015),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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