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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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수행하는 일 역시 허환망정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제8의 미세분별까지 완전히 끊은 구경무심의 돈오견성에
도달하는 길은 무엇인가? 성철스님이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은 보조스
님이 빠르게 가로질러 가는 길(徑截門)이라고 인정한 간화선 화두참구
의 길이다. 그런데 화두참구가 빠르게 가로질러 가는 길로서 그것이 비
록 돈오돈수를 끌어안고 있다고는 하겠지만 일정한 수행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말끝에 바로 깨닫는 본래적 의미의 돈오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제8의 미세망상이 모두 끊어지기까지의 면밀한 공부가 필
요한 것이고, 그런 점에서 그 깨달음은 수행에 의해 성취되는 증오證悟
일 수밖에 없다. 성철스님의 수증론이 결국은 선수후오先修後悟, 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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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일시修悟一時에 속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 가 제시되는 것
도 이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끝없는 수행의 강조가 성철스님 수증론의 한 특징이라
는 점이다. 그런데 깨닫지 못함과 궁극적 깨달음을 분명히 구분하고자
하는 이 수증론은 얼핏 미혹과 깨달음, 중생과 부처를 둘로 나누는 분
별의 함정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위험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간화선의 실천이다. 화두참구에서 일어나는 의정과
의단은 무엇보다 강력하고 순수한 무심의 실천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
341 1) 선수후오先悟後修 : 해오解悟와 임운수任運修, 2) 선수후오先修後悟 : 증오證
悟, 3) 수오일시修悟一時 : 오통해증悟通解證. 실지로 깨친 사람은 구경각을 증득
하였으므로 절대로 더 닦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돈수頓修라 한다는 돈오돈수頓
悟頓修는 오후수행悟後修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조가 청량淸凉
을 통하여 인식한 돈오돈수의 세 범주 중 2)의 선수후오와 3)의 수오일시에 가까
운 것 같다. 김호성(1989), 「普照의 二門定慧에 대한 思想史的 考察」, 『한국불교
학』, 제14집, p.421 참조.
제13장 해오점수 · 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