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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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비추고 지키는 일체의 수행까지 끊는 일(絶觀忘守)을 수행으로 보
는 우두종의 수증관에 천연외도의 경향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누카리
아 카이텐(忽滑谷快天)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공에 치우쳐 있다. 그래
서 상황에 따른 활발한 활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선종의
큰 흐름에 포함되지 못하고 지류로 밀려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적극적 좌선관심坐禪觀心의 길을 제시한 북종은 어떤가? 규
봉스님은 그들에게는 돈오가 없으므로 진정한 수행이 있을 수 없다고
판정한다. 그러면서 먼저 돈오를 체험한 뒤, 그 깨달음에 의지하여 수
행해 나가는 돈오점수의 길을 제시한 신회스님의 하택종을 바른 모델
로 제시한다. 당장 규봉스님 자신이 하택종의 계승자였다. 그는 신회스
님이 제시한 하택종의 종지가 앎(知)에 있다고 보았다. 이 앎이야말로
모든 오묘한 현상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공적한 앎(空寂
之知)이라고 불렀다. 규봉스님에 의하면 우리는 이 앎을 놓쳐 버렸다. 그
리하여 전체를 끌어안지 못하고 자아와 대상세계를 나누고 시비선악과
호오취사에 따른 분별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 공적한 앎을 깨닫기만 한다면 애착과 혐오의 분별심이 저절로 담
박해져 갈 것이다. 자비와 지혜의 마음이 저절로 그 밝음을 더해 갈 것
이다. 규봉스님은 이렇게 공적한 앎에 눈뜨는 일을 해오로 규정하고,
그 눈뜸에 기반한 수행을 점수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논의는 화엄과
선의 융합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은 선문의 돈오를 교가의 해오와 등치시키는 일을 무리하다
고 보았다. 나아가 “그 사람의 파멸을 자초” 354 하는 삿된 종파(邪宗)이고
앎과 이해를 숭상하는 그룹(知解宗)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 기
354 퇴옹성철(2015),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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