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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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하였으나 다생의 습기習氣가 심심甚深하다. 풍세風勢는 정지하나
파도가 오히려 흉용洶湧하고 성리性理는 현전하였어도 망심妄心이 오
히려 침입한다고 하였다. 그런 고로 오후悟後에 장구히 모름지기 반조
심찰反照審察하여서 망념이 홀연히 생기하거든 전연히 수거隨去하지 말
고 손감損減하고 또 손감損減하여 적연무위寂然無爲함에 도달하여야
비로소 구경이니 천하 선지식의 오후悟後 목우행牧牛行이 이것이다.
현대어역 자성이 본래 공적한 것으로서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단번
에 깨달았다 해도 이 오래된 습관의 기운을 단번에 제거하고 소멸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러므로 마음에 거슬리거나 뜻대로 되거
나 하는 상황을 만나면 화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옳고 그름
을 가리는 일이 불꽃처럼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면서 무수
한 번뇌가 전과 다름이 없게 된다. 만약 반야지혜로 공부를 더해 가
며 힘을 붙여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무명번뇌를 다스려 크고 크게 쉬
는 자리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옛사람이 말한 바와 같이 돈오는 비
록 부처님과 동일하지만 여러 생에 걸친 습관의 기운이 깊어서, 바람
이 멈추어도 파도가 여전히 일렁이듯 참다운 본성의 이치가 드러나
도 생각이 여전히 침범하는 것이다. [또한 대혜종고선사는 이렇게 말
하였다. “종종 영리한 자질을 갖춘 이들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일에 눈을 뜨고는 쉬운 일이라는 마음을 일으켜 더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세월이 오래 지나다 보면 전과 마찬가지로 번뇌의 흐름
에 휩싸여 윤회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한 차례의 깨달음으
로 그 이후의 수행을 방치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깨닫고 나면 오래도록 비추고 살펴서 혹 망상이 일어나면 절대 따라
가지 말고 덜어내고 덜어내어 의식적 행위가 없음에 이르러야 비로
제13장 해오점수 · 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