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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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선종의 돈오를 대립적 관계로 보는 입장에서 만약 진정한 선종이라

            면 점수를 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선종의 닦음과 깨달음이란 결
            국 생각과 지향과 모양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내려놓는 일이다. 이것

            을 6조스님은 무념, 무주, 무상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돈오점수는 생
            각이 있고, 지향이 있고, 모양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다. 요컨대 돈오점

            수는 해오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생각의 차원을 벗어날 수 없다. 해오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에 머무는 혐의가 있다. 단계를 설정했으므로

            모양에 묶여 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해오에 기초한 돈오점수가 교가
            에는 금과옥조가 되겠지만 선문에는 비상짐독이 된다.”                      378 라고 단언하

            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보조스님에게서 발원하여 조선시대 불교를 관통한 선교

            일치적 전통이 선종의 특장점을 훼손시켜 왔다고 본다. 이에 임제선,
            그중에서도 순수한 간화선의 수행 전통을 새롭게 정립하고 그것을 바

            르게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돈오점수와 같이 유
            심의 혐의가 드는 일체의 논의를 배격한 것이다.

               성철스님이 제시하는 화두참구는 강력하고 순수한 무심의 실천으로
            밀고 나가는 동력원이 된다. 여기에는 경전뿐만 아니라 화두의심을 일

            으키는 공안 자체까지 내려놓는 철저함이 요구된다. 대혜스님이 단언한
            바와 같이 공안에서 의심을 일으킨다 해도 그것은 삿된 마구니의 권속

            이다. 대혜스님이 이렇게까지 극언하는 것은 분별적 생각의 범주에 속
            하는 것들은 그 자체가 무심의 실천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이 말하는 선문정로, 혹은 달마정전은 대혜스님의 이러한 수
            증론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378   퇴옹성철(2015),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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