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8 - 정독 선문정로
P. 668
것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한 번에 두루 닦아지지만 밝히고 깨끗하게
함에는 점차가 있다고 했다. 이를 논하면서 밝음은 본래 밝음이고,
점차는 원점圓漸이라 했는데, 밝음은 본래 밝음이지만 거울을 닦는
것은 아무래도 단번에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하고 있다. 382
여기에서 영명스님은 돈오돈수가 자신의 취지에 딱 들어맞는다는 점
을 밝히면서 그 논거로 화엄종의 설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선은 달
마를 따르고, 교는 현수를 따른다. (禪尊達磨, 敎尊賢首.)”는 『종경록』의 저
술 방침이 드러난 현장이기도 하다. 영명스님의 수증론은 화엄의 원돈
사상과 선의 돈오론을 결합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종과의 친연
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성철스님은 이러한 내용의 문장은 취하지 않고 점수를 비판한 6조
스님의 설만을 인용하여 별도의 인용문으로 삼았다. 성철스님이 분명
히 하고자 하는 것은 “달마의 법에는 돈頓만 있을 뿐 점漸이 있을 수
없다.” 383 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영명스님이 선교일치의 입장에 서 있음
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적극 인용한다. 다만 위와 같이 동의할 수 없
는 차이가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방식을 취한다. 그럼
에도 이것은 규봉스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일관했던 것과 대조된다.
같은 선교일치라 해도 영명스님의 종지가 선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영명스님을 선이라는 용광로에 화엄, 유식, 천태 등의 다양
한 교학을 녹여낸 선사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번역문에 ③으로 표시한 바와 같이 ‘종경宗鏡’을 선종과 동의
『
382 宗鏡錄』(T48, p.626c), “如華嚴宗, 取悟如日照, 卽解悟證悟, 皆悉頓也. 又如磨
鏡, 一時遍磨, 明淨有漸. 今論, 明是本明, 漸爲圓漸. 明是本明者, 恐謂拂鏡非頓.”
383 퇴옹성철(2015), p.284.
668 · 정독精讀 선문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