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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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당장의 깨달음(돈오)과 지금 당장의 닦음(돈수)은 같은 말이 된다.

               돈오법문의 핵심은 지금 당장 부처를 깨닫고 지금 당장 부처를 보는
            데 있다. 왜 지금 당장 깨달아야 하는가? 지금 당장의 이 인연이 부처가

            현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드러난 부처를 보는 일이므로 지
            금 당장이라야 한다. 눈앞의 이것을 버리고 별도의 부처를 이루기 위해

            수행을 한다면 그것은 모래를 눌러 기름을 짜려는 일과 같고, 머리에게
            눈과 얼굴을 보라고 요구하는 일과 같다. 그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성철스님은 이러한 맥락에서 “점문은 미혹한 이들의 경계이지 깨달은
            이의 경계는 아니다.”       385 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문장을 인용하였다.

               인용문은 돈황본 『육조단경』에서 가져온 것이다. ①의 ‘미혹한 사람
            은 점차적으로 계합한다(迷人漸契)’는 구절은 원래 돈황 필사본에는 ‘밝

            으면 점차를 권한다(明卽漸勸)’로 되어 있었다. 오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것을 성철스님은 『돈황본 육조단경』              386 에서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한다

            (迷卽漸契)’로 교정하였고, 『선문정로』에서는 다시 ‘미혹한 인간은 점점 계
            합한다(迷人漸契)’로 수정하였다.

               『선문정로』와 동일한 문장은 ‘혜흔본惠昕本’에 보인다. 앞의 ‘~하다면
            곧’의 뜻을 갖는 ‘즉卽’으로 연결된 문장은 읽기에 따라서 점차적 계합

            을 인정하는 의미로 독해될 수 있다. 이에 비해 혜흔본이나 『선문정로』
            의 교정된 문장은 미혹한 사람과 깨달은 사람을 분명하게 나누고 있어

            그 낮추고 높이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번역문도 ‘미혹한 인간은
            점점 계합契合한다’고 옮겨져 있다. 그 낮추고 부정하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한편 종보본宗寶本 『육조대사법보단경』 등의 유통본에는




             385   퇴옹성철(2015), p.285.
             386   퇴옹성철, 『돈황본 육조단경』, 장경각, 1988,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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