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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한 사람은 점차적으로 계합하고자 하고, 깨달은 사람은 당장
깨달음을 닦습니다. 저절로 그러한 본래의 마음을 알면 본래의 자
성을 보게 됩니다. 깨닫고 보면 원래부터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면 무수한 겁을 윤회하게 됩니다. 384
6조스님이 돈오돈수의 길을 제창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바이
다. 그런데 위의 구절은 보기에 따라서 돈오와 점수를 함께 인정하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다. 사람에게 영리함과 우둔함의 차이가 있어서 조
건에 따라 돈오와 점수의 길이 갈린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리한
사람은 돈오의 길을, 우둔한 사람은 점수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우둔한 사람은 점수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뜻으
로 해석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물론 객관적으로 보자면 깨달음에 이
르기까지 점차적 수행의 과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돈오점수
론의 입장에서는 6조스님 역시 여러 생에 걸친 점수의 과정이 있었기
에 돈오가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6조스님은 점수
의 길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혹한 사람은 점수의 길, 깨달은 사람은 돈
오의 길을 걷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점수는 미혹의 길이
고, 돈오는 깨달음의 길이라는 것이다.
6조스님은 지금 당장 깨달음을 실천하도록 몰아붙이는 입장에서 법
을 설하였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배고픈 사람에게 종일 음식 이야기를 해봐야 허기가 해결되지 않는다.
돈과 점의 다양한 조합을 통한 설명들이 바로 음식 이야기에 해당한
『
384 南宗頓教最上大乘摩訶般若波羅蜜經六祖惠能大師於韶州大梵寺施法壇經』(T48,
p.338b), “善知識, 法無頓漸, 人有利鈍. 迷卽漸契, 悟人頓修, 識自本心, 是見本
性. 悟卽原無差別, 不悟卽長劫輪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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