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1 - 정독 선문정로
P. 671

다. 이에 비해 6조스님은 배가 고프다면 지금 당장 이 앞에 차려진 음

             식을 먹으라고 가르친다.
                요컨대 교학의 점수설법과 6조스님의 돈오설법은 서로 다른 차원에

             서 나온 말이다. 차원이 다르므로 충돌하지 않는다. 교학적으로는 궁극
             적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지위점차를 말할 수 있다. 석가족의 한 태자

             가 수행을 하여 성불하여 석가모니가 되었다. 거기에는 미혹한 시기가
             있었고, 점차적 닦음이 있었으며, 깨달아 부처가 되는 일이 있었다. 이

             에 대해 돈과 점의 개념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어떻게 말해도 모두 이치
             에 틀리지 않을 수 있다. 깨달음에 대해 돈오돈수, 돈오점수, 점수점오,

             점수돈오 등으로 어떻게 설명해도 각 측면에서 그 말이 성립할 수 있다
             는 말이다.

                그렇지만 6조스님은 지금 당장 깨달음을 실천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
             었고 우리에게도 그것만을 요구했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겠다

             는 생각을 하는 순간, 깨달음은 어떤 특별한 것이 되어 버린다. 어떤 경
             우이든 특별한 무엇을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모양

             에 갇힌 수행이 된다. 그것은 마치 눈을 가리고 연자방아를 끄는 나귀
             와 같다. 자신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제자리 돌기를

             반복하며 윤회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수행자라면 당장 이 자리에서 이 깨달음을 닦아야 한다. 나

             와 대상, 미혹과 깨달음을 분별하는 관념의 유희를 멈춰야 한다. 그리
             하여 밖이나 안에서 별도의 부처를 구하지 않고, 지금 당장의 이 마음,

             지금 당장의 이 현장이 바로 부처임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 ‘지금 당장’에는 시간이 개입하지 못한다. 시간이 없으므로 닦

             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직 이 순
             간에 깨닫는 일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6조스님이 말하는 지




                                                            제13장 해오점수 · 671
   666   667   668   669   670   671   672   673   674   675   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