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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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역  깨달음의 흔적조차 마음에 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데 하

                물며 믿음과 이해는 어떻겠는가? 그것은 순전히 의식이나 감정에 따
                른 견해로서 그 궁극적 진리의 본체에 친하고자 할수록 더욱 소원해

                지고, 가까이하고자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진리
                에 계합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남들로 하여금 진리에 계합하게 할

                수 있는 이치가 있겠는가?



             [해설]  중봉스님의 법문에서 가져왔다. 선종은 당송대에 황금기를 맞
             게 되는데 특히 송대에는 산림의 선사들이 주류문화 속에서 활약하는

             국면이 펼쳐진다. 그로 인해 선종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자선이 일어나 선의 진면목을 상실해 버리는 부

             작용이 심상치 않았다.
                원대에도 그러한 분위기는 여전하였는데 중봉스님만은 그렇지 않았

             다. 그는 황제에게 국사로 책봉되는 등 남다른 사회적 명예를 누렸음에
             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종교적·세속적 영예와 지위를 극력 사양하거나

             회피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저 작은 배나 암자를 거주처로 삼아 머
             무는 그곳을 환주암幻住庵이라 부르면서 납승의 본분을 지키고자 하였

             다. 그러자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문제를 제기한다. “큰 사찰에 주지로
             머물면서 널리 법을 펼치는 것 또한 부처님의 제자로서 감당해야 할 큰

             임무다. 작은 절개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임무를 회피한다면 그 또한 문
             제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이에 중봉스님은 주지가 갖춰야 할 조건

             으로 도력, 인연의 힘(緣力), 지혜의 힘(智力)의 세 가지를 들면서 그 이유
             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처와 조사의 도에 깨달음(悟證)이 부족하여 그저 말이나 문




                                                            제13장 해오점수 ·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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