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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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표현된 것들을 깊이 믿고 이해하고(信解)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옛 도인들은 깨달음을 얻고 난 후 더 이상의 위험이 없게 된
후에도 2, 30년을 아궁이 가에서 지내면서 그 깨달음의 자취를 차
단하고 그 깨달은 이치를 쓸어 버렸다. 그런 뒤 진제나 속제에 있어
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전혀 없게 되면 온몸이 날카로운 반야의
검, 본래의 거울(古鏡)이라서 한 상황에 머물지 않게 되고 쓸데없는
말이 없었다. 천만의 군중 위에 의젓하게 임하여도 높은지 영광스
러운지조차 몰랐다.
이러한 됨됨이를 갖추었다면 인간이나 천신들의 추대를 받는다
해도 그런대로 잘못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감정이나 견해를 벗지
못한 자들이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깨달음의 흔적을
다 씻어내지 못하면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이 걸핏하면 분분히
일어나게 되는데, 주체와 대상이라는 것은 모두 의식이나 감정에
따른 견해이다.
이와 같이 깨달음의 흔적조차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데 하물며 믿음과 이해는 어떻겠는가? 그것은 순전히 의식이
나 감정에 따른 견해로서 그 궁극적 진리의 본체에 친하고자 할수
록 더욱 소원해지고, 가까이하고자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진리에 계합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남들을 진리에 계
합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391
391 天目中峰廣錄』(B25, p.814a), “余於佛祖之道, 缺於悟證. 尋常形之語言毫楮者, 特
『
信解耳. 思古人得旨後, 復不懼危亡, 三二十年, 置身爐棙之側, 尙欲屏其悟跡, 蕩
其證理, 然後入眞入俗, 不見一法當情, 則其通身, 如利劒如古鏡, 無停機無剩語.
儼臨千羣萬衆之上, 不知爲尊, 不知爲榮. 具如是體裁, 或遭人天推出, 庶幾無沗.
斯豈情見未脫者, 所能假借耶. 原夫悟證之跡或未盡洗, 則其能所之見, 動輙紛然.
謂能所者, 皆情見也. 且悟證之跡, 尙不容存於心, 何况信解, 純是情見. 其於至道
之體, 愈親而愈踈, 益近而益遠. 且自未能會乎道, 安有能使人會道之理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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