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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의식 차원으로 이해한 자들이기 때문이
               다. 의식 차원으로 이해한 자들은 말이 뛰어날수록 종지에는 더 어

               둡고, 말이 감탄스러울수록 이치에는 더욱 어둡다.                 394



               성철스님은 중봉스님이 말한 의식 차원의 이해(情解)가 곧 신해信解,
            오해悟解, 해오解悟와 동일한 것으로 판단한다. 논의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해오解悟가 넓은 의미에서 정해情解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분
            명해 보인다. 옛 선사들은 깨달음을 논하는 데 있어서 바로 이 의식 차

            원의 이해를 완전히 떨어냈는지 여부를 핵심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원
            오스님은 “참구를 통해 투과하여 철저하게 견성하면 저절로 최고 맛의

            제호와 같아질 것이고, 의식 차원의 이해가 완전히 사라지지 못했다면
            견해가 지리멸렬하여 절대로 이러한 법문을 깨닫지 못한다.”                       395 라고 했

            다. 완전한 깨달음과 의식 차원의 이해가 서로 대비되고 있다. 성철스님
            의 해오 비판은 이러한 관점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①의 ‘정情’은 1981년 본에는 ‘오悟’로 되어 있다. 번역문 역시 ‘오해悟
            解한 자는’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2006년에 원문에 따라 ‘정情’으로 바

            꾸고, 번역문 역시 ‘정해情解한 자는’으로 바꾸었다. 성철스님은 이 장에
            서 해오의 폐해를 비판하기 위해 이 문장을 인용하였다. 따라서 해오解

            悟를 연상시키기 위해 ‘오해悟解’로 바꾼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초판본
            으로 돌아가 성철스님의 의도를 살려야 하며 ④의 번역문 역시 ‘정해 情

            解한 자는’을 ‘오해悟解한 자는’으로 재교정해야 한다.


                『
             394   天目中峰廣錄』(B25, p.887a), “間有素稱參學之士, 一歌一詠, 指其心體. 若觀眉目
                於鏡中, 毫髮不隱. 逮求其如常公之脫略, 則天冠地屨之不侔矣. 何以然哉 蓋常公
                乃徹悟者也, 他人則情解者也. 情解之者, 語益工而旨益昏. 言愈奇而理愈昧矣.”
                『
             395   佛果圓悟禪師碧巖錄』(T48, p.142b), “若參得透見得徹, 自然如醍醐上味相似. 若
                是情解未忘, 便見七花八裂, 決定不能會如此說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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