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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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홀연히 한 생각 쉬어 본래 마음의 본래 청정함을 밝게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문제는 여러 겁에 걸쳐 쌓아 온 습관의 힘이 견고하다는
             데 있다. 그 자아에 대한 애착의 뿌리가 여간해서 쉽게 뿌리 뽑히지 않

             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말끔히 씻어낼 것인가?
                그 핵심은 이런저런 앎과 견해(知見)가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

             용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데 있다. 앎과 이해(知解)를 쉬어 오
             직 본래 청정한 이 한마음에 맡겨 두고 망상이 생멸할 때마다 그것이

             생멸하는 자리를 밝게 비춰 보는 실천을 해야 한다. 어떤 경계가 나타
             나더라도 그것이 부처든 마귀든 상관할 것 없이 허공에 보검을 휘두르

             듯 오직 알아차리는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
             이다. 그렇게 거듭 정신을 차려 오직 화두를 들다 보면 집착이 떨어져

             나가는 때가 올 것이다. 다만 제8식의 습관의 힘과 애착의 뿌리는 쉽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예불, 송경, 참회, 다라니의 힘을 빌리면 그것

             을 녹이는 데 가일층의 힘을 얻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감
             산스님의 내린 가르침의 대강이다.

                그런데 깨달음에도 이해적 차원에서의 깨달음인 해오와 실질적 깨달
             음인 증오가 갈리고, 다시 증오에도 깊고 옅음의 차이가 있게 된다. 감

             산스님은 해오는 진정한 참선이 아니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이에
             비해 물을 마셔 차고 따뜻함을 스스로 분명히 알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계에 도달하는 것만이 진실한 참선이고 진실한 깨달음, 즉
             증오이다. 다만 이 증오에도 깊고 옅음의 차별이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깊은 깨달음에 도달해야 한다는 설법이 앞의 인용문과 같이 이어진다.
                여기에서 감산스님은 제8식을 타파하지 못하면 진정한 깨달음에 들

             어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철스님과 동의하는 부분이다. 감산스님의
             해오에 대한 비판을 보자.




                                                            제13장 해오점수 ·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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