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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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  정오正悟한 자는 장구한 암흑에서 광명을 만나며 대몽大夢

               을 홀연히 각성覺惺함과 같아서, 일一을 요달하매 일체를 요달하여
               섬호纖毫도 증애憎愛와 취사하는 정습情習이 흉중胸中에 체류하지 않

               느니라.
               만약에 조금이라도 정습情習이 다하지 못함이 있으면 곧 심성心性을

               오달悟達함이 원만치 못한 연유이다. 혹 심성을 원만히 오달치 못하
               면 모름지기 그 원만치 못한 당처當處를 소탕할지니, 특별히 생애를

               세워서 확철대오하여야 한다. 혹자는 심성을 오달하되 미진未盡하였
               거든 이천수행履踐修行하여 미진함을 궁진窮盡한다 하니, 이는 신초薪

               草를 안고 화재火災를 소멸하려 함과 같아서 더욱더 그 불꽃만 더하
               게 한다.



               현대어역  바른 깨달음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다가 광명

               을 만난 것 같고, 큰 꿈을 갑자기 깬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깨달으면 모든 것을 깨달아 사랑과 미움, 취함과 버림의 습관이 남

               아 있거나 마음속에 걸리는 일이 추호도 없게 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생각의 습관이 남아 있으면 그것은 마음의 깨달음이

               완전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혹 마음의 깨달음이 완전하지 못하면
               그 완전하지 못한 흔적을 쓸어내야 하는데, 따로 삶을 꾸려 크게 깨닫

               기를 기약해야 옳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깨달음이 미진하다면
               실천을 통해 그것을 완성한다고들 합니다. 그것은 마치 마른 나무를

               안고 불을 끄려는 것과 같아 그 불길을 더하게 될 것입니다.


            [해설]  중봉스님이 당시의 명신이었던 주일거사主一居士 서세융徐世隆
            에게 보낸 편지의 일단이다. 간편하고 쉽게 도에 들어가는 길을 제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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