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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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는 요청에 응해 답변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중봉스님은 먼저 바

             른 깨달음(正悟)과 유사 깨달음(相似悟)이 있음을 밝힌다. 그런 뒤 국가의
             정무에 참여하면서도 바른 깨달음에 들어가는 길을 걸을 수 있다고 강

             조하면서 화두를 선물한다. ‘물질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육신이 흩어
             질 때 어느 곳에 몸을 붙이고 생명을 세울 것인가(四大分散時, 向何處安身

             立命)’라는 질문이다. 이것을 책상에 붙여 놓고 고요히 참구하라는 것이
             었다. 그중 바른 깨달음에 대한 정의는 인용문에 보이는 바와 같고, 유

             사 깨달음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유사 깨달음이란 궁극의 이치처럼 보이는 많은 말들을 마음에 기억

                하여 이 몸뚱이에서 일어나는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 일들을 불
                생불멸의 신성神性이라 인정하는 경우입니다. 총명하고 영리한 자질
                로 그것들을 마음속에 수용하는 것인데, 도에 계합한 것처럼 보이
                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떻게 진정으로 생사의 큰일

                을 결단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398



                유사 깨달음은 생사의 큰일을 결단하고자 하는 수행자가 취할 일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성철스님은 이를 논거로 하여 유사 깨달음이라면

             그것을 내려놓고 새로 시작해야지 “점수한답시고 미진한 것을 억지로
             없애려 들고 닦고 보완하려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399 고 강조한다.

                두 번째의 인용문은 문답체로 이루어진 중봉스님의 『산방야화』에서
             가져온 것이다. 마음을 깨달은 이후에 실천(履踐)의 과정이 필요한지를



                 『
              398   天目中峰廣錄』(B25, p.759b), “謂相似悟者, 多以相似極理之言, 記憶于懷, 於四
                 大身中, 影影響響, 妄認箇不生不滅之神性. 用聰利之資, 領納在心, 似與道會實未
                 曾也. 豈眞誠求决死生大事者, 當如是耶.”
              399   퇴옹성철(2015), p.296.



                                                            제13장 해오점수 · 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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