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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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인伏忍, 순인順忍의 단계와는 달리 근본무명을 끊어나가는 진정한 수

             행 단계이기 때문이다.
                천태스님은 “10주 초주에 이르러 무상정등각을 성취한다. (初發心時, 便

             成正覺.)”고 선언하면서도 그것이 성불의 진정한 원인이 된다는 말이지
             실제로 묘각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다. 만약 초주에 실제로 묘각을 성취하는 것이라면 10주의 남은 9주는
             물론 10행, 10회향, 10지의 수행은 사족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천

             태에서는 부처님에게 내세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던 성문
             제자들의 지위가 바로 10주 초주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후 계속된 수행을 통한 번뇌의 타파와 진리의 증득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지위의 승급이 있게 된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주

             장인 것이다.
                성철스님은 원인으로서의 부처인 인불因佛과 결과로서의 부처인 과

             불果佛을 뒤섞어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 원교 교판의 원조인 천태스
             님이나 현수스님이 직접 이 말을 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문장을

             가져왔다. 성철스님은 결론 격으로 이렇게 말한다.


                화엄의 이치에서 보면 인과가 원융하고 상즉하여 서로 거리낌이 없

                다. 따라서 초주를 묘각이라 하고 묘각을 초주라 하는 등 그 표현
                을 달리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이치이다. 사실에 있
                어서는 10지에 가서도 인과 과가 엄연히 다르다.               416



                원인과 결과를 둘로 분별하는 일은 번뇌에 속하지만, ‘있는 그대로





              416   퇴옹성철(2015), p.307.



                                                            제14장 분파분증 ·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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