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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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 구경현지究竟玄旨를 오득悟得하면 즉시에 조사의 보위寶位에
등입登入하는지라 그 누가 돈頓과 점漸의 노문路門을 논의하며, 진여
본성을 정견하면 현전現前에 대각원통大覺圓通을 철증徹證하는지라
어찌 전前과 후後의 지위地位를 표적標的하리오.
현대어역 진리를 증득하면 조사의 지위에 들어가므로 돈과 점의 노
선을 논할 일이 없다. 견성하면 장애 없는 불보살의 경계를 생생하게
깨달으므로 전후의 지위를 세울 필요가 없다.
[해설] 『종경록』의 문답장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여기 질문이 있다.
“선종은 오로지 조사의 뜻을 드는 일에 전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어째
서 영명스님은 부처님과 논사들의 언어적 가르침을 인용하여 지침으로
제시하는가? 문자성인은 조사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종문의 가
르침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
인용문은 이에 대한 답변의 일환이다. 선문에서 경전을 보지 말라는
것은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문자만 따라다니는 폐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옛날 약산스님은 평생 『대열반경』을 손에서 내려놓
지 않았고, 마조스님이나 남양스님과 같은 조사들은 한결같이 경전에
근거를 두고 법문을 펼쳤다. 더구나 가섭존자는 석가모니와의 염화미소
로 선문의 초조가 되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조사 중의 조사에 해당한
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에 의지하여 진리에 나아가는 것
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문자로 표현되는 무엇이 실재한다는 관념은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하여 밖으로 찾아다니기를 멈추고 부처님의 마음에 직접 계
합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이 도리를 깨닫는 것이 바로 조사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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