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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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역  만약 곧바로 무심할 수 있다면 허공 밖으로 벗어나게 되니

               다시 어떤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겠는가?



            [해설]  『종경록』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선문에도 성불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하는 지위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제시된다. 이에 영명스님은

            두 가지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 보여주는 답변을 한다.
               영명스님에 의하면 진여일심의 차원에서는 지위 자체를 세울 수 없

            다. 그렇지만 실천의 차원에서는 습기를 다스리는 일이 있어야 하므로
            승진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 예컨대 8지보살은 마음 밖에서 정토를 보

            고 지혜로써 이치에 계합하고자 한다. 10지보살은 마음 밖에 대상을
            설정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주체와 대상을 나누는 습기가 남아 있다. 등

            각보살에게도 마지막 1품의 무명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거해
            나가는 점차적 단계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곧바로 무심하기만 한다면 계급이 필요 없지만, 단번에 무
            심에 계합하지 못한다면 부처의 지혜로 다스리고, 진리에 맡기고(五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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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으로 체득하는(六卽)  과정을 단계별로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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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영명스님은 진리에 맡기는 5단계(五忍)를 말한다. 그것은 번뇌를 항복시키는 단
                계(伏忍), 믿어 의심치 않는 단계(信忍), 진리의 흐름에 맡기는 단계(順忍), 불생불
                멸의 이치를 밝게 아는 단계(無生忍), 모든 번뇌가 소멸하여 고요한 단계(寂滅忍)
                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얘기된다. 자세한 것은 『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T8,
                pp.836b-837a) 참조.
             30   영명스님은 천태스님이 말한 몸으로 체득하는 여섯 차원(六卽)을 순차적으로 밟
                아 나가는 길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이치 이대로 부
                처(理卽)임을 체득하는 차원, 배움을 통해 일체법이 불법임을 체득하는 차원(名字
                卽), 직접 실천하여 이치에 상응하는 차원(觀行卽), 거듭 실천하여 부처에 다가가
                는 차원(相似卽), 불성을 보아 점차적으로 지혜를 밝혀 가는 차원(分眞卽), 구경각
                에 도달하여 진리 그 자체로 살아가는 차원(究竟卽)이라는 단계를 갖는다. 자세
                한 것은 『摩訶止觀』(T46, pp.10b-10c)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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