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2 - 정독 선문정로
P. 772

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누가 깨닫고 무엇을 깨닫는가?’ 깨닫는
            주체인 자아가 있다면 이미 깨달음이 아니다. 앎의 대상인 진리가 따로

            있다면 그 또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주체와 대상의식이 함께
            사라져야 진정한 깨달음이 구현될 수 있다. 청량스님은 수행의 요체를

            이렇게 말한다.


               비록 이 마음이 곧 부처라고는 하지만 오직 깨달은 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깨달음이 따로 있고 앎이 따로 있다
               고 한다면, 지혜의 해가 있음(有)의 영역에 떨어져 버리게 될 것입니
               다. 그렇다고 비춤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고 한다면 캄캄하게 어두
               운 구름이 공空의 문을 가려 버릴 것입니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

               으면 앞과 뒤가 끊어져 비춤의 본체만이 홀로 드러납니다. 사물과
               자아가 모두 진여와 같게 되어 마음의 근원에 곧바로 도달하게 됩
               니다. 그러면 지혜도 없고 증득함도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
               습니다. 상대하여 다스림도 없고 닦음도 없게 됩니다.                 438



               성철스님은 이 중 첫 구절을 인용하였다. 교가의 최고봉이라 할 청량

            스님도 실질적 깨달음에서 일어나는 앎(證知)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인용이다. 교종에서도 이러한데 선종에서 앎과 이해에

            의미를 둔다면 “이는 자살 이상의 자살”               439 이 아니냐는 강조가 행해지
            는 지점이다.




             438   景德傳燈錄』(T51, p.459b), “雖卽心卽佛, 唯證者方知. 然有證有知, 則慧日沈沒
                『
                於有地. 若無照無悟, 則昏雲掩蔽於空門. 若一念不生, 則前後際斷, 照體獨立,
                物我皆如. 直造心源, 無智無得, 不取不捨, 無對無修.”
             439   퇴옹성철(2015), p.333.



            772 · 정독精讀 선문정로
   767   768   769   770   771   772   773   774   775   776   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