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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적으로 제법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우선 제법諸法은 ‘우주법계

            의 유형무형의 사물과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서 만법과 동의어로 쓰인
            다. 만법유식萬法唯識, 심생만법心生萬法 등의 만법이 그것이다. 위에 언

            급한 바 있는 조선의 두 해석가는 이 의미를 취하였다. 유문스님은 이
            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현상을 거두어 이치로 돌아가는 일이다. 오로지 전체를 내려놓는
               차원이다. 중생이니 부처니 하는 이름이나 더러우니 깨끗하니 하는
               모양이 텅 비어 공적하다. 모든 것을 끊어 깃들일 곳이 없게 하였

               다.  443



               만법을 모양과 이름으로 분별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공적한 이치가
            된다는 것이다. 시끌벅적한 현상과 고요한 삼매가 아니므로 원융의 차

            원에서 보면 시끄러움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제법은 부처님이 설한 진리를 의미한다. 성철스님

            이 이렇게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절대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
            였다는 점이다. 제법諸法이라 하면 성문과 연각의 법도 있고, 대승의 법

            도 있고, 최상승의 법도 있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오직 돈오원각의 견성
            이라야 진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원증圓證 아닌

            분증分證과 해오解悟를 견성이라 함’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
            적인 제법’이라는 설명식 번역을 한 이유에 해당한다.

               ⑥에서는 증지證智를 ‘구경무심의 증지證知’로 번역하였다. 증지證智와
            증지證知의 관계에 대해서는 ①에서 다룬 바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구



             443   有聞科註, 『義相法師法性偈』(B32, p.820a), “攝事歸理, 唯是全揀, 生佛之名, 染
                淨之相, 蕭然空寂. 泯絕無寄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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