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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총명과 함께 뛰어난 논리력과 표현력을 갖고 있었던 아난이

            과거에 들었던 법문에 기초하여 부처님의 대승설법에 반박을 하는 일
            이 있었다. 이에 부처님이 많이 듣고 기억하는 일의 폐해를 지적하는

            설법을 하는데, 이 인용문은 그 일단이다.
               이 설법에서는 아난이 비록 여러 겁을 거치며 여러 부처님의 법문을

            독송하고 기억하고 있지만 이것이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
            러므로 삼매를 닦아 분별을 내려놓고 고통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

            하고 있다. 실제로 아난은 고통 속에 있었다. 무수한 법문을 기억하는
            총명함과 수려한 외모로 여신도들의 흠모를 받았지만 이로 인해 문제

            가 발생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일이 음녀 마등가의 유혹이
            었다. 나중에 마등가는 부처님의 가피로 음욕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부

            처님에게 능엄신주를 받아 무루의 선법을 닦아 아나함과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아난은 여전히 듣고 기억하는 일을 능사로 삼아

            도의 흐름에 들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다.
               번역문에 표시한 바와 같이 주목할 부분이 있다. ①의 ‘불타가 아난

            에게 고구가책苦口呵責하였다’는 문장은 인용문에 없는 설명이다. 부처님
            이 아난을 꾸짖는 문맥임을 보여주기 위해 원문에 없는 문장을 제시한

            것이다. 이 말은 『종경록』의 표현(佛責阿難言)을 가져온 것일 수 있다.
               ②에서는 ‘금언옥음金言玉音을 독송하여도’와 같이 원문에 없는 설명

            식 번역을 추가하였다. 원문의 비밀묘엄秘密妙嚴의 비밀은 심오하다는
            뜻이고, 묘엄은 엄숙하고 청정하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설법은 하나이

            지만 돈오의 근기를 갖춘 이에게는 돈오법으로 전달되고, 점수의 근기
            를 갖춘 이에게는 점수법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청법자들은 그 설법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모른다. 그래서 비밀이라고 표현한다.
            같은 이치로 하나의 음성이 무량한 음성으로 전달되고, 하나의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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