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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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은 『간화결의론』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간화결의론』은 보조

             스님의 입적 이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된 후 간행된 것이다. 그래서 일
             부 학자들은 이것이 보조스님의 저술이 아니라 그 제자 혜심慧諶스님의

             저작일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여기에서 보조스님은 화엄의 원돈신해와 간화선의 활구참구 간의

             차별성을 논한다. 화엄의 진성연기眞性緣起의 설법과 사사무애의 실천과
             체중현體中玄의 도리는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오묘한 이치이다. 그

             러나 경절문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전체가 결국은 의식의 범주를 벗어나
             지 못하는 것이며, 언어와 개념의 상대성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

             서 앎과 이해의 틀을 깨뜨리고 확! 하고 단번에 열려 법계일심法界一心
             을 직접 증득하는 경절문이 세워진다. 이 인용문은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이 문장은 보조스님이 스스로 원돈신해문에서 말하는 돈오점수가

             해오解悟라고 인정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원래의 문장이 원돈신해의 가치를 함께 인정하는 문맥을 구성하

             고 있다는 점이다. 말의 길, 뜻의 길이 있고, 듣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므로 또한 초심 수행자가 믿어 수용하고 정성껏 실천하기 쉽

             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맥만 가지고 보자면 이것은 지
             해의 가치를 인정하는 문장이 된다.

                다만 이것은 결론적 부정을 위한 잠정적 인정의 언어 전략에 의한 것
             이다. 결론에서 보조스님은 의미를 생산하는 화엄적 지해를 경절문 간

             화선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그것은 모두 의식으로 헤아리는 병이므로
             간화문에서는 이를 배격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여기에서 보조스님은

             화엄의 원돈신해와 간화선의 활구참구가 질적으로 얼마나 다른지를 역
             설하고 있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 문장의 인용을 통해 돈오점수의 돈




                                                            제15장 다문지해 · 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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