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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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시봉하는 제자가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워 행동했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나아가 이에 대한 가섭존자의 비판에 아난은 자기를 정당
             화하는 변명을 한다. 이것은 아난에게 자아 집착이 남아 있었다는 증거

             가 된다. 이렇게 가섭존자는 선정에서 아난의 유루번뇌를 발견한 뒤 여
             섯 가지 돌길라죄에 대한 대화를 통해 다시 그것을 확인한다. 그래서

             문답이 끝난 뒤 다시 한 번 “번뇌를 단멸한 뒤 다시 들어오도록 하라.
             남은 번뇌가 끝나지 않으면 들어오지 말라.”고 축출령을 내렸던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 아난의 축출 사건을 들어 유루의 망상번뇌를 멸진하
             는 일만이 진정한 불법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초기 율장의 서적들

             에 이 일이 실려 있음을 일일이 거론함으로써 그것이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임을 설득하고자 한다. 성철스님은 여기에서도 진정한 깨달음은 3

             세6추의 소멸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아난이
             축출 당한 뒤 얻게 된 깨달음 역시 3세6추를 모두 멸진한 누진의 깨달

             음이었다고 규정한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당시 먼저 칠엽굴에 머물고
             있던 모든 성문들 역시 대력아라한이라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아난을

             비롯한 모든 성문들이 부처님과 동일한 깨달음을 성취한 것이라면 소
             승과 대승을 나누는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성문들은 번뇌장은 멸진하

             였지만 소지장은 소멸시키지 못했다거나 아뢰야의 3세 번뇌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하는 유식학의 규정이 무효가 되는 것이다.

                성철스님도 이러한 모순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의 무상정
             법을 부촉받은 가섭존자가 그 법통을 아난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강조

             한다. 조사선과 여래선의 통일을 지향하는 성철스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깨달음의 완전성과 동일성이다. 가섭존자에서 아난존자에게 이어

             지고 이후 서천 28조를 거쳐 중국 6조에 이르기까지, 선문의 모든 정
             안종사들이 도달한 깨달음은 모두 부처님의 깨달음과 완전히 동일한




                                                            제16장 활연누진 ·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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