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8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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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라꾼이 통금을 어기는 격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깨달
으면 모든 일이 한 집안의 일이고, 깨닫지 못하면 천 가지, 만 가지로
다른 법이다.”
[해설] 수행자가 묻고 법연스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문장이
다. 이에 의하면 5가의 종풍이 다르지만 그것은 모두 분별을 쉬게 하
여 생사에서 벗어나도록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수도 서울에 들어가
는데 혹은 남쪽 길로 들어가고, 혹은 북쪽 길로 들어간다. 혹은 동쪽
으로 들어가고, 혹은 서쪽으로 들어간다. 길은 다르지만 도착하고 나면
모두 그곳이다.
또한 5가의 종풍이 다르다고 하지만 모두 6조스님의 자손이다. 그러
므로 원래 한 집안의 일이다. 남북의 선풍이 다르지만 모두 달마의 자
손이고 가섭의 후예이며 석가의 문중이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그렇다 해도 상호 간의 다름과 분별이 있을 수 있
다. 결국 문제는 우리 자신의 분별심이다. 그래서 법연스님은 오직 깨달
음이 있어야 5가의 종풍이 원래 한 집안의 일임을 알게 된다고 한 것이
다. 그뿐인가? 깨닫고 나면 철천지원수가 한 집안이고, 중생과 부처가
한 가지 일이다.
5가의 종풍을 비롯한 선문의 다양한 방편들은 한결같이 수행자를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시설된 것들이다. 각자의 깨달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다르므로 그에 상응하는 방편이 8만4천 가지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게 다양한 계기와 방편이 모두
한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상호 우열을 다투는 일
만큼 소모적인 것은 없다. 각 종풍의 우열은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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