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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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각 종파의 입장에서는 그 문하의 수행자를 물샐틈없이 가두어

             수행에 전념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배타적 문파
             주의로 보이는 일들이 일어난다. 대혜스님이 묵조선을 삿된 참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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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격하면서 여기에 빠지면 간화선을 닦을 수 없다고 한 것 도 그 일례
             에 해당한다.

                성철스님은 5가 종풍의 우열과 심천을 논하는 일을 절대 반대한다.
             그것은 불법에 눈을 뜨지 못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5가 종풍

             의 우열을 다투던 중국적 상황과 성철스님 시대의 한국적 현실에 차이
             가 없을 수 없다. 성철스님 시대의 한국 선문은 이미 임제종 천하가 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5가 종풍을 말하는 것은 관념적 유희였다.
             그래서 성철스님의 5가 종풍의 논의는 그 우열을 다투는 방식으로 진

             행될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그 기이하게 빛나는 언어들에 빠져 관념의
             유희를 즐기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고 차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성

             철스님이 5가 종풍의 차별에 대한 논의를 차단한 이유이다.
                ①에서 ⑥까지 동일한 방식의 생략이 이루어졌는데 대화체 문장을

             정연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질문이 모두 ‘여하如何’로 시작하므로
             그것이 학승의 질문이라는 것이 이미 밝혀져 있다. 그래서 ‘학승이 말

             하기를(學云)’의 표기를 모두 생략하였다. 이에 따라 ‘스승님이 말씀하시
             기를(師云)’로 표기되어 있는 법연스님의 답변을 ‘말씀하시기를(云)’로 줄

             여 표현하였다. 이로써 ‘질문(如何)’→‘답변(云)’으로 이루어지는 정연한 호
             응 관계가 드러난다.

                ⑦의 긴 문장은 1981년 초판본에 있던 것이 이후 가로쓰기로 조판




              472   大慧普覺禪師語錄』(T47, p.922b), “尙爾滯在默照處, 定是遭邪師引入鬼窟裏無
                 『
                 疑. 今又得書, 復執靜坐爲佳, 其滯泥如此, 如何參得徑山禪.”



                                                            제18장 현요정편 · 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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