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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움과 밝음이 서로 만난다.”



            [해설]  대혜스님은 간화선을 전파하면서 조동종의 묵조선을 비롯한

            다른 선법을 삿된 선(邪禪)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묵조
            선의 제창자인 굉지정각스님과 생사의 교류를 나누었다. 굉지스님 역시

            열반에 임해 불법의 등불을 대혜스님께 맡긴다는 유언을 할 정도였다.
            서로를 배척하면서 서로를 인정한 것이다.

               왜 배척하는가? 수행자들이 크게 깨닫기 전에는 오직 하나의 공부
            에 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혜스님의 묵조선 비판은 상

            호 우열을 겨루자는 도전이 아니다. 하나의 선문에 들어와 도를 공부하
            는 사람이라면 다른 가풍을 기웃거리며 지해를 키워 가서는 안 된다는

            차원에서의 비판이다.
               왜 인정하는가? 깨달은 입장이 되면 한마음의 근원에 서서 모든 선

            풍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게 깨달은 입장이 되면 5
            가의 종풍이 모두 한결같이 무심의 실천이며 진여와 계합이 된다. 이

            인용문은 깨달음의 차원에서 5가의 종풍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나열한
            다. 그 차별 없음을 드러내기 위한 배치이다. 이를 통해 자아에 기초한

            분별과 집착의 마음을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①과 같이 ‘외가닥 실이 오면 꼰 실이 간다(絲來線去)’는 구절을 ‘실이

            가면 실이 온다(線去線來)’로 바꾸었다. 사絲는 외가닥 실이고, 선線은 이
            것을 여러 겹 꼬아서 겹친 실이다. 한쪽에서 외가닥 실(絲)을 매기면 다

            른 한쪽으로 꼰 실(線)이 나오는 실 잣는 이치를 비유로 들어 위앙종의
            면밀한 상호작용을 표현한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것을 ‘선거선래線去線來’

            로 바꾸어 그 상호 간에 작용이 동등하게 오가는 점만을 드러내었다.
               ②~⑥과 같이 각각의 표어가 구체적으로 5종의 어느 종파를 가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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