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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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므로 짧다고 늘리지 말고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뜻이다.
불법의 지혜는 실상지혜(實智)와 방편지혜(權智)의 통일이다. 실상지혜
는 말없이 이치에 계합하고, 방편지혜는 현상의 차별상을 그대로 안다.
이 둘이 동시에 구현되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지만 교화 대상에 따라 어
느 한쪽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그러니까 여기에 인용된 설암
스님의 설법은 3현3요의 3이나 4빈주의 4에서 어떤 특별한 무엇을 찾
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공략한다. 그래서 임제스님의 도는 평상
에서 나온 것이라 말한 것이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①과 같이 ‘평상에서 나온 것(出乎平常)’이라는 말
을 ‘일반적 앎을 넘어선 것(出乎常情)’으로 바꾸었다. 성철스님은 아뢰야
식 차원의 미세한 번뇌가 완전히 소멸한 구경무심이라야 소나무 곧고
가시나무 굽은 실상을 남김없이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 평상을 도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알고 이해하는(知解) 일과 깨
달음을 등치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성철스님은 이 점을 우려하여 ①과
같이 문맥의 뒤틀림을 감수하면서까지 변환을 행한 것으로 보인다.
【18-5-③】 當知遮一句子는 便是金剛圈이며 栗棘蓬이니 一句
中에 具三玄하고 一玄中에 具三要니라
선문정로 당지當知하라. 자일구자遮一句子는 문득 이 금강권金剛圈이며
율극봉栗棘蓬이니 일구 중에 3현을 구비하고 일현一玄 중에 3요가 구
족具足하니라.
현대어역 이 한마디는 바로 금강의 굴레이며 목에 걸린 밤송이로서
한마디에 3현이 갖추어져 있고, 1현 중에 3요가 갖추어져 있음을 알
제18장 현요정편 · 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