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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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 그 여실히 참구하여 실지實地로 오달悟達한 도인은 금일에만
상봉하기 드문 것이 아니요, 왕석往昔에 있어서도 또한 일찍이 다수
를 볼 수 없느니라.
현대어역 진실하게 참구하고 실지로 깨달은 도인은 오늘날에만 드물
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많이 볼 수 없었다.
[해설] 중봉스님의 법문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중봉스님은 수행에 있
어서 비견할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철저함을 보여준 선지식이다.
한 수행자가 질문을 한다. “달마의 법은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길에 들
어서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는 길이다. 그러니 방석 위에 앉아 공부를
짓는 것이 오히려 조사를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에 중봉스님은 가르치는 모양, 수행하는 모양을 짓지 않았을 뿐이
지 깨달은 사람치고 뼈를 깎는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고 답한
다. 그리고는 용담스님과 향엄스님의 예를 든다. 용담스님이 스승 천황
스님에게 묻는다. “스님께 의탁한 지 오래되었지만 마음의 요체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천황스님이 말한다. “그대가 차를 가져오면
손을 들어 받았고, 그대가 문안 인사를 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하
나 그대에게 마음의 요체를 열어 보여주지 않은 곳이 있었던가?” 이에
용담스님이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용담스님은 저절로 깨달았을까? 그동안 목숨을 걸고 알고
자 하는 마음 하나로 지낸 간절한 세월이 있었다. 천황스님의 가르침은
그 성숙한 인연의 마지막 껍질을 깨주는 일일 뿐이었다. 이것이 중봉스
님이 하고자 하는 대답이었다.
향엄스님의 예 역시 마찬가지다. 향엄스님은 위산스님으로부터 부모
제19장 소멸불종 · 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