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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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태어나기 이전의 일에 대한 화두를 받았다. 누구도 대신 답해 주
지 않는 이 숙제를 받아 향엄스님은 모든 지해를 다 내려놓고 화두일념
으로 지낸다. 그리고 대나무에 기와 조각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
는다. 역시 오랜 세월 동안의 간절한 참구 끝에 일어난 일이다.
중봉스님이 생각하기에 공부에 효과가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공
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행에 영험이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진실한
뜻과 기개가 없어서이고, 생사의 무상함을 일대사로 여기지 않기 때문
이고, 억겁토록 쌓아 온 습기를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용맹한 정진,
불퇴전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스승이 없다, 도반이 없다,
환경이 좋지 않다, 인연이 맞지 않는다는 구실을 댈 뿐이라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미륵일 수 없고, 저절로 석가가 될 수 없다. 오직 화
두를 들되 원수 대하듯이 놓치지 않으면 확연히 열리는 날이 있을 것
이다. 『신심명』에 “미움과 애착만 없다면 훤하게 분명해지리라.”고 했다.
『증도가』에 “망상을 제거하지도 말고 진여를 구하지도 말라.”고 했다. 옳
은 말이다. 그렇다고 이 말만 기억하면서 수행이 필요 없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당장 영가스님만 해도 “법의 재산을 손상시키고 공
덕을 소멸하는 것은, 이 마음과 의식과 잠재의식 아닌 것이 없다.”고 했
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화두 들기를 원수 대하듯 일생을 상대하다
보면 확연히 열리는 날이 있을 것이다. 참선은 진실한 참선이라야 하고,
깨달음은 진실한 깨달음이라야 한다.
이것이 중봉스님의 답변이 가리키는 바의 대강이다. 성철스님은 하지
않기 때문이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문
장을 가져왔다. 누구라도 하기만 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용문 자체만 가지고 보면 깨달음이 극히 어렵고 그 예
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물론 여기에 증득하지 못했으면서 증득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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