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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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인간과 천인들의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 뛰어나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어리석다고 뒤로 물리쳐서는 안 된다. 마음에 든다

                해서 사랑하고, 마음에 거슬린다 해서 미워하면 안 된다. 평등한
                자비로써 사물과 하나로 만나야 한다. 이것이 모두 다 부처님을 대
                신하여 교화를 실천하는 일로서, 주지의 지위에서 스승으로 불리
                는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실질이다.            496



                여기에서 말하는 주지는 총림의 방장을 가리킨다. 절의 살림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성철스님은 여기에서 명분(名)의 상대적 의미로 쓰인 ‘실질(實)’을 ‘실오
             實悟’로 번역했다. 문자만 가지고 보자면 문맥을 벗어난 번역이다. 그런

             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것은 심층 의미에 충실한 번역이다. 방장이 갖
             추어야 할 실질은 결국 실제적 깨달음 외에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적 깨달음 없이 방장의 이름을 취한다면 그것은 명실상부의 대원
             칙을 위배하는 일이 된다. 또한 방장이라는 명예와 이익에 움직인다면

             갈수록 깨달음에서 멀어져 지옥에 떨어지는 일만 남게 된다는 말이 성
             립하게 된다.

                중봉스님은 스스로 이것을 실천하는 생애를 살았다. 그는 여러 차례
             방장 초빙을 사양한다. 수십 년 동안 양자강에 조각배를 띄워 거처로

             삼기도 하고, 황하 유역에 작은 암자를 엮어 거주하기도 했다. 나아가
             이 작은 거처조차 ‘환영으로 머무는 암자(幻住菴)’라 부르며 머물지 않음




                 『
              496   天目中峰廣錄』(B25, p.814b), “所云住持之實何實也. 遠稟先佛之教體, 近持諸祖
                 之化權, 內存自己之眞誠, 外起人天之傾信. 不以賢而使進之, 不以愚而使退之, 不
                 以順而愛, 不以逆而憎, 以平等慈與物無間. 皆所謂代佛揚化, 據位稱師之實也.”



                                                            제19장 소멸불종 ·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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