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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데, 부처의 지혜생명을 끊어 1천 부처가 세상에 나온다 해도 참
회가 통하지 못한다.
[해설] 대혜스님의 법문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성철스님은 돈오점수
를 극력 비판했고, 대혜스님은 묵조선 비판에 전력을 다했다. 그것은
각자의 현장에서 만난 숙제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철스님이 상대했던 당시의 우리 불교계 현장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
면서 전통으로 자리 잡은 선교일치적 불교였다. 성철스님이 보기에 그것
은 선은 물론 교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선종의
돈오돈수적 본질의 회복을 높이 외쳤던 것이다.
대혜스님 당시의 현장은 묵조선이 흥기하여 간화선과 경쟁하던 상황
이었다. 당시 묵조선은 본격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참선에 깊은 관심을
갖는 사대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특히 그저 앉기
만 하라는 간단한 수행법, 지금 당장의 이것을 집착 없이 비추면 부모
미생전의 소식에 저절로 계합하게 된다는 뚜렷한 메시지가 힘을 발휘하
였다. 이 묵조선에서는 사건으로서의 깨달음을 부정한다. 그래서 깨달
음을 향해 전력을 기울이는 간화선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대혜스님은 이를 사이비 선(邪禪)으로 규정하고 극력 배제한다. 대혜
스님의 어록을 보면 이런 사건이 있었다. 당시 유불도의 핵심에 통달했
다고 소문이 났던 정상명鄭尙明이라는 선비가 스님을 찾아와 따진다. 묵
묵히 말을 끊는 일은 마갈타에서의 부처님이나 바이살리에서의 유마거
사가 보여준 바 있는 높은 경계이다. 수보리는 바위 속에 말없이 앉아
수행하였고, 달마는 소림에서 말없이 면벽하였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쉬고 쉬는 데 있어서 가장 수승한 길이라 할 수 있다. 스님이 이것을 반
대하는 것은 자신이 그 경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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