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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이나 속세나 있는 곳에 자재하면 되기 때문에 쉽다. 요컨대 추구하

            지 않는 것이 부처이기 때문에 쉽다. 공을 들이거나 선행을 쌓을 필요
            도 없고, 애써 닦고 고행을 할 필요가 없으며, 복과 지혜로 꾸미는 일과

            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네 가지 어려움이란 무엇인가? 첫째, 잘 믿기 어렵고, 잘 생각하기 어

            려우며, 잘 깨닫기 어렵고, 잘 닦기 어렵다. 자성을 바로 보아 단 한 번
            에 여래의 지위에 곧바로 들어가는 일에 큰 믿음을 내기 어렵다. 둘째,

            스스로 부처임을 놓치는 일 없이 생각생각 마음을 챙기기 어렵다. 셋째,
            마음을 챙기는 일은 지속성을 핵심으로 하지만 깨달음은 찰나에 일어

            난다. 그러나 시절인연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무수한 계기가 있어도 깨닫
            기 어렵다. 또한 깨닫지 못한 차원에서는 깨달음의 경계를 이해하기 어

            렵고 또 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깨닫기 어렵다. 넷째, 깨달음 이후 그
            것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될 때까지 닦는 것이 어렵다

               인용문은 ‘셋째, 깨닫기 어려움’에 대한 해설에서 가져온 것이다. 성
            철스님은 미혹한 사람과 깨달은 이의 차이가 근본적으로 정반대의 입

            장에 있다는 점을 먼저 강조한다. 그런데 불인스님의 요지는 깨달음이
            이해와 설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일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있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에 호응하여 법의 이치를 추구하는 일은 ‘깨달음을 원칙으로 한다(以

            悟爲則)’는 점을 부언하고 있다.
               인용문이나 해설은 부처의 씨앗을 소멸하는 일을 경계한다는 장의

            취지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다만 깨달음을 원칙으로 한다는 말 속에는
            분별적 이해를 배제한다는 말이 들어 있다. 분별과 지해로 깨달음을 대

            신하고자 하는 것은 부처의 종자를 죽이는 일이므로 이를 통해 장의
            취지를 살린 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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