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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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하고 투과해야 할 경계라고 규정한다. 숙면일여를 실경계로 체험한

             다 해도 그것 역시 공안을 들어 투과해야 할 관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매일여의 실경계를 투과하여 만나는 실오로서의 깨달음

             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완전한 죽음과 같은 삼매에서 되살아나는
             사중득활의 경계이다. 그래서 제9장 「사중득활」의 장은 숙면일여가 궁

             극의 도달처가 아니라 통과할 관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수행자가 화
             두에 통일되어 무심에 이르면 우주의 밖에 홀로 있는 듯하여 모든 경

             계와 절연되는 일이 일어난다. 6근, 6진, 6식이 소멸하여 보아도 보이
             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맛을 모르는 상황이 되는 것

             이다.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죽은 사람과 같은 상태이므로 이것을
             ‘크게 한 번 죽는다(大死一番)’고 표현한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대사

             大死의 경계는 수행자들이 고대해 마지않는 승묘한 경계이다. 세간적 망
             상이 더 이상 그를 침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어록에서

             는 불 꺼진 재(死灰), 식은 재(寒灰), 말라버린 나무(枯木), 물이 끝나고 산
             이 다한 자리(水窮山盡處), 백 척 장대 끝(百尺竿頭), 파도를 가르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衝波逆水) 등으로 비유한다. 수행 현장에서는 이 무심경
             계를 깨달음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머무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

             다. 이에 성철스님은 이것만 가지고는 결코 견성이라 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그것은 진여와 완전히 하나 되지 못한 불완전하며 임시

             적인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아의 완전한 해체를 통한 진여와의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졌

             는지를 점검하는 일이 필요해진다. 대혜스님, 설암스님, 고봉스님 등은
             모두 이러한 일념불생의 자리에 이르러 잠자는 상태에도 그것이 여전히

             그러한지를 점검하였다. 그런 뒤 자신이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여기에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이를 통해




                                           부록 - 성철선의 이해와 실천을 위한 시론 · 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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