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8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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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상정을 무심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꿈에서의 집착과 번

            뇌는 여전하다. 그러므로 무상정은 진정한 무심이 아니다. 다시 꿈속에
            집착과 번뇌가 사라졌다 해도 꿈 없는 숙면의 차원은 3세 번뇌의 지배

            속에 있다. 그러므로 멸진정 또한 진정한 무심이 아니다. 3세의 능견상
            과 경계상, 그리고 그 뿌리인 무명업상을 타파할 때라야 진정한 무심의

            경계에 도달한다. 요컨대 아뢰야식으로부터의 벗어남이 있어야 진정한
            무심이다. 이것이 구경무심론의 핵심이다.

               구경무심론은 아뢰야식 3세의 타파를 강조한다. 이를 위해 성철스님
            은 유식의 논의를 적극 가져오되 제7식을 논의의 범주에서 제외하고자

            한다. 구경무심론의 표종장은 제3장 「번뇌망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서는 번뇌라는 것이 결국 생각과 의식 그 자체이며 제6의식과 제8아뢰

            야식의 차원을 타파한 궁극적 무심이 될 때라야 번뇌의 소멸을 기약할
            수 있음을 거듭 인증하고자 한다. 【3-1】에서 현수스님의 문장을 적극

            인용하면서 3세6추의 논의에 있어서 말나식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피력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에 의하면 제7말나식은 제8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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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세 가지 미세번뇌 를 일으키지도 않고, 제6식과 같이 외적 대상
            에 반응하여 여섯 가지 거친 번뇌 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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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41   깨닫지 못함에 상응하여 세 가지 모양이 생긴다. 무명업상과 능견상과 경계상이
                그것이다.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마음이 움직인다. 이것이 무명업상이다. 무명업
                상의 움직임으로 인해 보는 주체가 생긴다. 보는 주체가 있으므로 인해 대상경계
                가 나타난다. 이에 대해서는 元曉, 『起信論疏記』(X45, p.216c) 참조.
             42   여섯 가지 거친 번뇌는 다음과 같다. 3세 중의 경계상을 대하여 그것을 나누는
                지상智相, 분별한 둘에 대해 고락을 나누는 상속상相續相, 고락의 분별에 의해
                집착을 일으키는 집취상執取相, 집착의 대상에 명칭을 붙여 헤아리는 계명자상
                計名字相, 법집과 아집에 의해 선악의 업을 일으키는 기업상起業相, 업으로 인해
                고해에 떨어지는 업계고상業繫苦相. 『大乘起信論』(T32, p.577a)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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